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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쿠팡을 지우다

    최근 10년간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던 기업들을 돌이켜보면 쿠팡은 빠지지 않을 것 같다. 1년 365일 아무때나, 공휴일 포함으로, 무료배송으로 물건을 주문할 수 있으며, 주문하면 다음 날 새벽까지 도착한다. 물건의 가격은 마트보다 2~30%는 저렴하고, 반품마저도 편리하다.

    종합적인 사용자 경험 측면에서 다른 이커머스 사업자가 따라올 수 없을 정도의 압도적인 사용 경험이다. 그렇기에 쿠팡이라고 하는 서비스를 나는 존경하고 많이 사랑한다.

    물론 쿠팡 앱을 켰을 때 전면을 덮는 광고와 같이 여러 다크패턴은 존재해왔다. 쿠팡의 기업문화와 노동자를 대하는 태도가 노동자 친화적이지 않기에 논란이 되는 경우도 많이 봐 왔다.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었으나, 쿠팡이 내가 경험하는 한국 이커머스 시장을 180도 바꿔버린 것을 고려했을 때, 나는 여전히 쿠팡을 존경하고 있었다. 어제까지는.

    오늘 나는 쿠팡을 지웠다. 쿠팡이 제공하는 사용자 경험이 내가 생각하는 선을 넘었기 때문이다.

    쿠팡은 최근 로켓와우 멤버십 월회비를 4,990원에서 7,890원으로 인상하면서, 사용자에게 가격 인상에 대한 동의를 받고 있다. 그런데 가격 인상 동의를 받는 방식이 많이 심하다. 물건을 구매할 때, 원래 항상 있었던 ‘구매’ 버튼을 ‘월회비 인상에 동의하고 구매’로 바꾼다. 그 위에 아주 희미하게 ‘동의하지 않고 구매’ 라벨을 올린다. 사용자는 월회비 인상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한 번의 잘못된 클릭으로 동의하게 되어버리는 UI이다.

    사용자의 잘못된 선택을 유도하는 UI는 물건을 구매할 때마다 계속 표시된다. 그리고 한 번 동의했을 때, 동의를 철회할 방법은 없다. 내가 어떤 약관에 동의했는지 다시 볼 방법도 없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대단히 황당하고 기업에 대한 신뢰가 깨어지는 순간이다.

    쿠팡의 성공 방정식은 최고의 고객 경험과 만족도에서 왔다고 생각한다. 물건을 주문하고, 받고, 반품하는 모든 경험에서 압도적인 사용성 덕분에 쿠팡이 성공했다고 믿는다. 사용자의 잘못된 클릭을 유도하고, 선택권을 빼앗는 방식은 쿠팡의 성공 방정식이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쿠팡이 사용자를 속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용자에게 선택권을 제공하고, 선택을 돌이킬 방법을 주면 좋겠다. 쿠팡이 사용자의 약관 동의에 있어서도 최고의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기를 기대한다.